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그랬을까?" 이다. 초록색 나뭇잎들, 그리고 파란 하늘..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998년 그해 초여름의 설레임이 내 모든 것을 바꿨다고 말하면, 핑계만 되는거겠지만, 그래도 그때 본 그 하늘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설레임 속에 '세상이 나를 속이고 있다'라는 착각에 빠져서 흔히들 말하는 '탈선'이란 것도 해봤다. 모두가 그렇게 탈선을 시작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잘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는게 탈선이었다. 다들 하지 말라는 것들을 그들은 하고 있었고, 내게 있어서 그 작은 반항이 신선하게 느껴졌었다.
당구장을 다니기 시작하고, 당구장에 항상 뿌려지는 담배연기 때문에 담배도 시작하고.. 그렇게 처음 폐속으로 와 닿는 담배연기로 인해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낄때, 나는 극도록 긴장감이 해방되서 그럴거라는 착각마져 하게되었고, 몸에서 나는 담배냄세가 '세상을 깨닳은' 그런 냄세로 느껴졌었다.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이, 담배를 필때 인상을 찌푸리는 것은 곧 뭔가를 더 아는 그런 것 같아보였다. 이렇게, '뭐뭐한 척' 하기 위해 담배를 시작했었고, 그렇게 평범한 나는 조금씩 틀어져가기 시작했다.
고2까지 꽤 괜찮았던 성적도 결국 관심 과목이었던 영어를 제외하고는 별볼일 없게 되었다. 집에서는 유학얘기를 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렇게 졸업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던 것도 벌써 7년이 넘었다. 기나긴 시간.. 일탈에 대한 착각.. 그때와 다르게 이제는 담배는 건강하고만 연결되는 그런 사회인식이 널리 퍼졌다. 좋은 현상. 하루 한팩, 4불에 가까운 돈. 친구들은 내가 담배피는 것을 싫어하지만, 이제는 끊을 수 없어 못끊는 것이 되었다.
항상 내가 되새기던 수필. 법정스님의 <무소유>. 뭔가에 얽혀버려, 소유한다는 것이 스스로의 발목이 잡는 일. 내가 흡연자의 권리로 담배를 핀다고 말하지만, 결국 내 그런 의지에 상관없이 이미 담배에 발목이 잡힌게 아닐까? 내가 마음껏 스스로를 해칠 수 있는, 그정도의 자유를 말하지만, 내 자유는 담배를 계속 펴야하므로 뺏긴 것이다. 젠장, 그래 끊고 말겠다고 다짐한 것이 이 이유이다. 한두번도 아니고 수십번, 어쩌면 백번도 넘게 시도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참 다행인 것 하나는, 이제는 끊고 싶다는 내 마음이다.
더이상 안피고 싶다. 안필 것이다. 담배가 싫다.
아참, 사진은 제임스 딘. 당시에는 담배가 해로운가에 대한 증명이 안되어 있어서, 담배 회사들이 영화등을 통해 많은 간접광고를 했고, 결과, 흡연이 멋있게 보이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이제는 담배피는 사람을 보면, 냄세가 나 보인다. 정말 끊자. 그동안 즐거웠다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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